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과 음식을 잘못 먹어 체한 것처럼 속이 더부룩하면서 계속되는 구역질이 밤새도록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 숙소의 침대에서 홀로 외롭게 누워있으니 기대했던 여행의 첫 시작을 치가 떨리는 고산병으로 시작하던 내 머릿속엔 “내가 이곳에 왜 왔을까?"라는 후회가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이런 저럼 생각을 하며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다 나는 어느 순간 고통이 잦아드는 것을 느끼며 슬며시 잠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티벳 여행은 고산병이란 반갑지않은 친구가 제일 먼저 반겨주며 시작되었다.
2002년 어느 날 우연히 접하게 되었던 밀라레파(Milarepa, 티벳의 위대한 승려이자 시성(詩聖))라는 이름. 당시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에 관련된 기사를 인터넷으로 접하다 기사에 실린 그들이 1994년에 티벳의 독립을 위한 기금을 모집하는 밀라레파 재단(Milarepa Fund)을 설립하여 기금 모금을 위한 자선 콘서트를 열고 있다는 내용에 눈이 쏠렸다. 처음 화려한 라인업의 콘서트에 시선이 뺏겼던 난 그들이 설립한 재단의 이름인 밀라레파가 도대체 무슨 뜻인가 궁금해졌다. 그러한 의문에 자연스레 검색창에 밀라레파란 단어를 입력하게 되었고 그에 흥미가 생겨 어느새 그에 대한 책을 한권 구해 읽어봤다. 그러다 자연스레 밀라레파의 대지, 티벳에 대한 호기심으로 발전하였고 우연히 접한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을 읽으며 나는 샹그릴라(Shagri-La, 잃어버린 지평선의 배경이 되는 티벳 어딘가에 존재하다고 전해지는 지상낙원과 같은 곳)에 대한 나의 알 수 없는 동경은 점점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커져갔다.
밀라레파(Jetsun Milarepa, 1040~1123) - 티벳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자이자 시인으로 지금까지 그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티벳에 전해져 내려온다. 전해져오는 얘기로 그는 장사로 큰 돈을 벌었던 아버지가 일곱 살 때 죽자 그의 백부는 그 재산을 빼앗고 그의 어머니에게 자신과 결혼하기를 강요하였다고 한다. 이에 그의 어머니는 이를 완강히 거부하고 밀라레파에게 흑마술을 배우게 했는데 이 흑마술을 익힌 밀라레파는 주문으로 백부의 집을 무너뜨려 그 가족을 모두 몰살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원수를 갚은 후 밀라레파는 자신의 행동에 회의를 느끼고 죄업을 뉘우치며 불문에 귀의했다고 한다. 이후 카규파(Kagyupa, 티벳의 4대 종파 중의 하나로 우리가 알고 있는 달라이라마는 4대 종파 중 최대종파인 겔룩파의 수장이다.)의 마르파의 제자가 되어 깨달음을 얻어 많은 이들을 신통력을 발휘하여 교화하다 그를 질투한 승려가 준 음식을 먹고 열반하였다고 한다.
과거를 포함한 티벳의 영토와 여행경로를 나타낸 지도.
2005년 7월 19일 밤. 지상의 불빛들이 하나둘 점점 멀어지면서 이내 비행기 창밖으론 까만 어둠만이 가득했다. 그러한 어둠을 뚫고 나를 실은 비행기는 중국 시안(西安)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륙시의 짧은 침묵을 뒤로 하고 공항에서 처음 만난 일행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지만 이내 어색함에 우리들 사이엔 그저 적막만이 가득 차며 서로 각자만의 상념에 빠져들었다. 3시간여을 날아 시안에 도착해 공항 주변의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은 우리는 육로로 라싸(拉薩, Lhasa)로 들어가기로 한 이들과 헤어져 이른 아침에 라싸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위해 다시 청두(成都)행 비행기에 올랐다. 짧은 비행을 마치고 청두공항에 내린 우리는 먼저 청두에 도착해 있던 두 명을 만나 간단히 서로 인사를 나눴다. 당시 티벳 여행의 처음을 같이 했던 일행들은 경상도에서 온 누나 둘과 경주에서 교사를 하신다는 이선생님 그리고 먼저 청두에 도착해 합류하셨던 훈이형과 중국어가 유창하셨고 나와 동성(同姓)이라 내가 작은 할아버지라 불렀던 분까지 해서 나를 포함해서 6명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중에 라싸에서 헤어질 때까지 가졌던 짧았던 시간은 내가 했던 모든 여행의 시간 속에서도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었던 듯 하다.
드디어 라싸행 비행기에 오르고 비행기가 이륙하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제 인천공항을 이륙할 때 느꼈던 두근거림이 커지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흘러 창밖의 지상 풍경이 푸른색에서 황토빛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보면서 조금씩 티벳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풍경이 점점 내가 사진으로 보며 상상만 하던 풍경이 펼쳐질 즈음 멀리서 어렴풋이 라싸의 관문인 공가공항이 모습을 드러냈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활주로에 비행기가 착륙하고 활주로로 내려오는 계단을 내려가 공가공항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여름이지만 고산 지대인지라 서늘한 느낌의 바람과 강한 햇살이 느껴졌다. 활주로에 내려 주변을 둘러보니 메마른 티벳의 풍경과 푸른 하늘이 펼쳐지고 있었다.
라싸의 관문인 공가공항에 도착하다.
얄룽창포를 따라 공가공항에서 라싸로 가던 중에.
2시간여를 달렸을까? 메마르고 황량하기만 했던 주변의 풍경이 바뀌며 어느새 잘 정돈된 건물들이 하나둘씩 보이는 가 싶더니 우린 드디어 라싸에 진입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라싸의 풍경을 구경하고 있는데 옆에서 나를 두드리며 반대편을 한번 보라고 소리친다. 그곳에선 라싸를 상징하는 포탈라궁이 그 모습을 드러내며 라싸에 들어서는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라싸의 상징이 포탈라궁.
그러나 포탈라궁을 제외한 라싸에 대한 첫 인상은 결코 내가 상상하던 라싸의 모습이 아니었다. 내가 본 라싸의 첫 느낌은 마치 중국의 다른 여느 소도시를 둘러보는 느낌이었다. 하긴 내가 티벳 여행을 했던 2005년에 이미 라싸 인구의 50% 이상이 한족이라는 얘기가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티벳의 중심인 라싸가 티벳인들의 라싸가 아닌 한족의 라싸가 되어가고 있단 생각이 들자 참으로 씁쓸한 기분이었다. 아마 2006년에 개통된 칭짱철도(靑藏鐵道)로 인해 지금에 이르러선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지만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으리란 건 아마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물론 그저 티벳을 여행하는 우리같은 외부에서 온 여행객들에게 칭짱철도는 분명 비행기와 도로로 제한되었던 티벳으로 가는 길이 쉬워졌을지 모르겠지만 한족의 유입과 한족 자본의 유입이 가속화되면서 티벳의 원래 주인들이 가지고 있던 위치마저 한족들이 차지하게 되면서 티벳인들은 그들의 땅에서조차 2등 시민으로 전락했고 이러한 일들이 계속된다면 티벳 문화의 정체성은 점점 희미해져 역사책 속에서나 볼 수 있게될지 모를 일이다. 언제 다시 가볼지 모르겠지만 부디 티벳의 문화가 계속 잘 보존되길 바랄뿐이다.
칭짱철도(靑藏鐵道) - 칭하이성(靑海省) 시닝(西寧)에서 꺼얼무(格爾木)를 거쳐 티벳 라싸에 이르는 1956km에 걸쳐 놓인 철도로 꺼얼무와 라싸를 연결하는 구간의 경우 평균 해발고도가 4500m에 이르며 가장 높은 곳의 경우 5072m에 위치하여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철도다. 2006년 7월 1일 완전히 개통하였는데 교통이 불편하여 물자와 인력의 교류가 힘들던 티벳과 중국 본토를 잇게 되어 본토에서 티벳으로의 무차별적인 한족들의 이주와 한족 자본 유입으로 결국 티벳이 문화·경제적으로 더더욱 중국에 종속하게 되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티벳불교 최고의 성지인 조캉사원.
숙소인 태양빈관에 도착해 우선 짐을 풀고 티벳을 여행하는 동안 많은 도움을 주셨던 오선생님의 숙소에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숙소를 나서 바코르 광장으로 향했다. 라싸에서의 첫날인지라 고산병 걱정에 가볍게 바코르 광장 주변을 돌고 숙소로 돌아와 일행과 함께 여행 계획을 세우다 오선생님께 물어볼 것이 있어 다시 오선생님의 숙소가 있는 4층에 오르는데 나도 갑자기 어지럽고 숨이 가빠지는 느낌이었다. 고산병이었다. 머리는 무언가로 찌르는 듯이 아팠고 구역질이 계속 되고 배는 가스가 차는 느낌이었다. 일행들과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어서 결국 첫날은 그렇게 고산병과 함께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날밤 고산병의 고통속에서 내 머리속에 떠오른 생각은 티벳에 온 것에 대한 후회뿐이었다. 그렇게 나의 티벳 여행은 시작되었다.
다음날 눈을 뜨니 어제의 고통이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고산병 증세는 사라지고 나는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을 수 있었다. 숙소 주변의 한족 식당에서 가볍게 아침을 해결하고 전날 오선생님께서 말해주신대로 포탈라궁의 표를 예매하기 위해 시간에 맞춰 포탈라궁으로 향했다.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포탈라궁은 중국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그 보호를 위해 관람객수와 시간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어 관람일 전날 미리 예매를 해야 했고 관광 성수기인 여름엔 금방 표가 동이 나 예매 시작 시간에 맞춰 미리 줄을 서서 기다리던지 여행사를 통해 예매를 해야 했다.
포탈라궁 담을 따라 이어진 마니차.
2시간여를 기다려 다음날 표를 예매한 우린 포탈라궁 주변을 가볍게 둘러보기로 하고 포탈라궁 입구 옆으로 난 담을 따라 있던 마니차를 생전 처음 돌려보며 포탈라궁 옆의 시장에 들어서니 온통 야크버터 냄새가 진동을 했다. 처음 맡는 어색한 냄새에 약간의 거부감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그리운 티벳의 향기다.
조캉사원 앞에서 오체투지중인 할머니.
다음날 아침 우선 우린 조캉 사원으로 향했다. 꽤나 이른 시간이었지만 조캉 사원 앞은 오체투지를 올리고 있는 이들과 조캉 사원 정문 양 옆에 위치한 곳에서 향을 태우는 이들로 인해 북적이고 있었다.
조캉사원의 최고 볼거리인 사원 옥상의 화려한 금장식들.
티벳 불교의 최대 성지 중 하나인 조캉 사원. 조캉 사원은 티벳을 최초로 통일한 송첸 캄포가 그의 왕비 중 하나였던 네팔 공주 브리쿠티 공주가 가져온 불상을모시기 위해 처음 건축되었다고 한다. 후에 송첸 캄포의 또 다른 부인인 문성공주가 가져 온 불상도 라모체 사원에서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러나 티벳 불교의 성지로 오랜 세월을 보낸 조캉 사원이었지만 문화혁명 초기에 홍위병들에 의해 조캉 사원의 많은 부분들이 파괴되어 일부는 돼지우리로 쓰이는 치욕을 겪기도 하였다고 한다. 1980년대 복원이 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조캉사원 옥상에서 바라본 포탈라궁.
조캉사원 옥상에서 내려다본 바코르 광장의 모습.
포탈라궁을 향해서.
조캉 사원을 둘러 보고 나와 바코르 근처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예매했던 포탈라궁 입장 시간에 맞춰 포타라궁으로 향했다. 입장 시간 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기에 조금 기다리니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석판에 조각된 티벳인들이 입에 달고사은 육두진언 '옴마니반메훔'.
포탈라궁은 홍산 위에 지어진 건축물이기에 포탈라궁에 들어가려면 매표소를 지나 나지막한 언덕길을 올라야 한다. 우리나라였다면 조금 빠른 걸음으로 오르겠지만 라싸에 처음 도착해 당한 경험이 있는지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언덕길을 오르다 보니 옆으로 티벳어가 새겨진 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티벳인들이 많이 외우는 옴마니반메훔의 육자진언이었는데 이 진언은 티벳 어디를 가나 쉽게 볼 수 있었다.
포탈라궁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
언덕을 조금 올라 몇개의 문을 지나니 넓은 마당같은 곳이 나오며 반대편에 포탈라궁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입구쪽으로 다가가니 계단이 3개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가운데 계단만은 통행이 제한되어 있었는데 알고보니 입구의 가운데 계단은 오직 달라이라마만이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입구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포탈라궁내부를 구경할 수 있는데 아쉽게도 포탈라궁 안(실내를 말함)에선 촬영이 금지라 사진이기도 했고 사실 워낙 빛이 부족한지라 아무리 카메라의 감도를 올린다해도 삼각대가 없으면 촬영하기 결코 쉽지 않은 환경인지라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아쉽긴 하다.
포탈라궁 옥상의 금장식들.
포탈라궁에서 쥐를 잡는다는 고양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