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라싸를 떠나야 할 시간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일주일 정도 전에 떠나야 했겠지만 일정에 문제가 생겨 네팔 일정을 거의 포기하고 라싸에 원치않게 오래 머물러야 했는데 이제는 라싸를 떠나 네팔로 떠나야 한다. 이른 아침 네팔행 랜드쿠루저를 타고 가기로 한 하선생님 내외와 이선생님과 함께 차에 올랐다. 얼마가지 않아 익숙했던 라싸의 모습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이젠 초모랑마(에베레스트산) 베이스캠프를 거쳐 네팔의 카트만두로 향하는 3박 4일의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라싸를 떠난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을 무렵 차가 고갯길을 갈지자로 계속 오른다. 주변에 보이는 풍경이라곤 구름으로 생각되는 그저 하얀 세상이다. 티벳의 여름의 이른 오전의 하늘은 언제나 구름으로 뒤덮여있다.(티벳의 여름은 우기에 해당되는데 보통 밤에 주로 비가 내리는데 그 양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리고 정오무렵이 되면 서서히 구름이 걷히려 푸른 하늘을 보여준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고개의 정상에 이르러 잠시 차가 멈췄다. 차에 내려 아래를 내려다 보니 우리가 뚫고 온 구름과 팔자 좋게 풀을 뜯고 있는 야크들의 모습이 보인다.
네팔로 가는 우정공로를 따라 계속 길을 달리니 얌드록쵸(티벳의 4대 성호(聖湖)의 하나)가 보이는 캄바라 언덕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얌드로쵸를 바라봤지만 날씨가 흐려서인지 기대와는 달리 조금 실망스런 모습이었다. 역시 아무리 멋진 풍경도 날씨가 도와주지않으면 별무 소용없는 거 같다. 캄바라 언덕에서 기념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길을 나선다. 얌드록쵸를 끼고 달리다 호수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얼마를 달렸을까? 시야에 작은 마을 하나가 나오는데 이 마을의 이름은 나가체(Nagartse)라고 한다. 이 나가체에 잠시 들러 이른 아침에 길을 떠나느라 굶주린 배를 채우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휴식을 마치고 나가체에서 차가 출발한지 30여분 쯤 되었을까? 어느 순간 우리 눈앞에 거대한 빙하의 모습이 펼쳐진다. 차에서 내리니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이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 빙하의 이름은 카롤라 빙하(Kharola Glacier)라고한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이 카롤라 빙하가 점점 녹고 있다고 한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와 검색을 해보니 2035년쯤이면 이 빙하가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다고 하나. 언제 다시 티벳을 방문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곳을 다시 찾을 때 과연 난 이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이 빙하뿐 아니라 히말라야 전역의 빙하가 녹고 있다고 하는데 이 빙하들이야 말고 수많은 사람들이 의지하며 살아가는 강들의 시작인 것을 하면 결코 단순한 환경재앙이라 치부할 수 없을 것이다.
티벳의 여름은 유채꽃이 만발한다. 우기에 속해 오전과 밤에는 잔뜩 구름이 하늘을 뒤덮지만 정오 무렵이 되면 서서히 구름이 걷히며 따스한 햇살이 유채꽃이 만발한 곳을 비추면 아름다운 색의 조화가 만들어진다. 나에게 티벳의 여름 이미지를 떠올리라고 한다면 바로 위 사진이 바로 나의 이미지다.
카롤라 빙하에서 출발해 1시간여를 가면 빙하가 녹아 옥빛으로 빛나는 호수를 만난다. 이곳은 낭추계곡(Nyang chu Valley)이라 불리는 곳인데 이곳에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티벳의 물 부족과 수력발전을 위해 댐을 만들었고 이 호수는 이런 결과로 만들어진 인공호수다.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지만 인공호라지만 낭추계곡의 풍경과 옥빛 호수의 조화가 아름답다. 이곳이 잘보이는 언덕에 오르니 누군가 쌓았을 돌탑과 타르쵸의 흔적이 보였다. 나도 그 돌탑에 무사귀환을 빌며 돌을 살며시 올려놓고 발길을 돌렸다.
낭추계곡을 지나 얼마 안 가면 갼체(Gyantse)에 도착한다. 낭추계곡에 자리한 중국의 침략 이전 티벳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였다고 한다. 여행자가 이 도시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펠코르 최데 사원(Pelkhor Chode Gompa)과 갼체 쿰붐(Gyantse Kumbum) 그리고 갼체종(Gyantse Dzong)을 보기 위해서다. 갼체에 도착해 우선 펠코르 최데 사원과 갼체 쿰붐을 구경하기 위해 표을 끊고 들어가면 정면으로 마니차와 함께 펠코르 최데 사원의 대법당의 모습이 보인다. 이 사원은 1418년에 축조되었다고 하는데 특이하게도 사캬파, 부파(Bupa 사캬파의 한 갈래), 겔룩파의 세 개 종파에 속한 사원들이 여러개 있었다고 한다. 초기에 사캬파의 사원이었으나 겔룩파의 세력이 커지면서 펠코르 최데 곰파의 주요 세력도 겔룩파로 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성기에는 15개에 이르는 긍원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대부분 파되되어 겨우 2개의 승원만이 남아있다고 한다.
아마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이 곳 갼체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사진의 갼체 쿰붐을 보기위해서 일 것이다. 갼체 쿰붐은 15세기에 건축되었으며 펠코르 최데 사원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이 사원의 양식은 전형적인 네팔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그 이름은 '10000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거대한 스투파에는 112개의 법당이 존재하며 현재 그중에서 30여개가 개방되어있다. 스투파의 벽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올라가며 그 법당을 돌며 각각의 법당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양한 불상과 벽화가 존재하는데 티벳을 여행할 때 다른 사원이나 스투파들과는 달리 독특한 형태인지라 꽤나 진지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갼체쿰붐 앞에서 오체투지를 올리고 있는 티벳인.
펠코르 최데 사원과 갼체쿰붐을 둘러보고 난 후 갼체종(Gyantse Dzong)을 바라본다. 마음 같아서는 갼체종에 오르고싶었지만 일행이 있고 저녁이 되기전에 시가체에 도착해야 하디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차에 올랐다. 참고로 갼체종은 14세기 초에 건축된 요새로 얄룽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팔코르찬(Palkhortsan)의 궁이 있던 자리에 후에 이 지방 영주였던 팍파 팔 상포(Phagpa Pal Sanpo)가 성을 지으며 요새를 건축했다고 한다. 네팔의 구르카(Gurkha) 왕국과 라다크(Ladak) 왕국 등의 침공을 격퇴했던 난공불락의 요새였지만 1904년 인도에서 북진한 영국의 침공을 받아 요새는 함락되고 이곳을 지키던 1000여명의 티벳인들은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고 한다.
이제 오늘의 목적지인 시가체를 향해 고고~ 갼체부터 시가체까진 포장도로인지라 비포장도로로 피곤한 내 엉덩이가 환호를 지른다.
오후 늦게 시가체(Shigatse)에 도착해 숙소를 정하고 바로 앞의 타쉴훈포(Tashilhunpo) 사원으로 향했다. 타쉴훈포 사원은 겔룩파의 주요사원중의 하나로 1447년에 총카파의 제자 겐덴 드루프(Genden Drup)가 1447년 설립한 사원으로 판첸라마가 거주하는 사원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거주하는 11대 판첸라마는 중국 정부가 세운 꼭두각시 가짜 판첸라마일 뿐이고 달라이라마가 1990년 지명한 진짜 11대 판첸 라마는 어린 나이부터 지금까지 중국 정부에 의해 억류되어 있다고 한다. 억류 당시 나이가 7~8살 정도로 알려졌는데 당시 세계에서 가장 어린 정치범으로 현재 어디에 억류되어 있는지 모르며 생사도 불분명하다. 아무튼 이렇게 꼭두각시가 운영하는 타쉴훈포 사원이지만 문화혁명 당시 다른 티벳의 사원들과는 달리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아서 그 시설들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표를 끊고 타쉴훈포 사원으로 들어가금빛으로 치장된 지붕을 한 건물들과 탕카를 거는 거대한 흰벽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왼쪽에 난 길을 따라 26미터의 마이트레야(Maitreya, 미륵)상이 있는 잠캉 쳰무(Jamkhang Chenmo) 등을 거쳐 여러 사원을 둘러보다 타쉴훈포 사원에서 규모가 가장 큰 켈상(Kelsang Temple Complex) 사원에 이르니 대법당 앞에 많은 여행객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보였다. 예불 시간에 맞춰 그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었다. 우리도 잠시 주변에서 사진을 찍으며 기다리고 있으니 어린 승려들이 법당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어린 승려의 모습.
승려들이 법당으로 들어가자 우리도 조심스레 그들을 따라 법당으로 들어가 주변에 자리를 잡았다. 예불이 시작되고 불경외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사진을 찍는 것은 실례인 거 같아서 포기. 자리에 앉아 우두커니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을 즈음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 법당을 빠져나왔다. 법당을 나와 다시 정문쪽을 내려오며 사원을 좀 더 구경하고 타쉴훈포 사원을 나섰다. 숙소에 도착해 바로 옆의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숙소 주변을 둘러보며 시가체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