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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티벳

샹그릴라로 가는 길, 티벳 여행기 2

 

 
 새벽 4시. 비몽사몽 상태에서 말을 듣지않는 몸을 이끌고 우린 하늘호수라 불리는 남쵸로 향했다. 남쵸(Namtso)는 라싸에서 북쪽으로 19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호수로 이때 마침 남쵸로 가는 길이 공사중인지라 공사 시간을 피해야 했기에 새벽 4시란 이른 시간에 길을 떠나야만 했다. 워낙 이른 시간이었기에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뿐이라곤 어둠뿐이었고 길엔 오직 우리만이 달리고 있었다. 차에 올라 라싸를 빠져나갈 때가 되었을까 처음 얘기를 나누던 것도 잠깐 다들 졸리는지 이내 잠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어둠이 사라지고 주변의 풍경이 어스름이 들어나며 그동안 내가 티벳에 와서 이제껏 보지 못했던 낯설면서 아름다운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지만 못내 아쉬웠지만 넓게 펼쳐진 초원과 야크(Yak) 떼들... 그리고 설산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참고로 티벳의 여름 날씨는 우기로 아침 저녁으로 흐리고 비도 내리는 경우가 많지만 정오 무렵(베이징과 동일한 시간대를 쓰는지라 실제 시간대와의 괴리때문에 실제 우리의 오전 10시 무렵이라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게 갠다.

라켄라를 넘으니 서서히 남쵸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남쵸로 들어가는 길목의 어느 공에 위치한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매하고 차를 달리는데 어느 순간 우리앞을 양떼가 가로막고 서 있다. 양떼가 지나가길 기다려 조금 더 달리니 남쵸로 넘어가는 고개의 정상 라켄라(Lakenla)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이정표를 바라보니 이곳의 해발 고도는 5190m. 백두산 높이가 2700m대니 2배가 조금 안되는 높이다. 우린 5000m가 넘는 이곳을 밟은 것이 신기해 이정표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고 부산을 떨었다. 그렇게 한차례 부산을 떨다 하늘에서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다시 차에 오르는데 갑자기 다리가 풀리며 머리가 어지럽다. 편안히 차를 타고 갈 땐 몰랐는데 아차하는 사이에 고산 반응이 온 것이다. 차에 올라 앉아 있으니 그런 증상은 곧 사라졌다. 일행에게 이 얘기를 하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머지 분들도 모두 약간의 고산 증세를 느꼈다고 하신다. 어째 불안하다.

 라켄라에 올랐으니 이젠 내려갈 일만 남았다. 그렇게 비포장 도로를 신나게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저 멀리 하늘 호수 남쵸의 모습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남쵸는 티벳어로 하늘 호수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호수면의 높이가 해발고도 4718m로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소금 호수로 티벳 불교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성호(聖湖) 중 하나다. 우리가 흔히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를 얘기할 때 가장 많이들 떠올리는 남미의 티티카카(Titicaca)의 해수면 높이가 3810m니 과연 하늘 호수란 이름가 그렇게 어울릴 수 없다. 하지만 해발고도가 그만큼 높은만큼 고소 적응이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남쵸를 여행하는 것은 고산병의 위협에 노출되기 쉽다.  때문에 티벳을 여행할 때 어느 정도 고소 적응이 된 여행의 일정 후반에 남쵸를 여행하는 것이 고산병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아쉽게도 우린 그러한 사항을 그만 간과하고 말았다.
 

웅대한 모습의 남쵸와 그곳을 달리는 오토바이 한대.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거 같은 남쵸인지라 조금만 달리면 도착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최종 목적지인 남쵸 남동쪽의 타쉬 도르(Tashi Dor)사원까진 생각보단 긴 1시간여를 달려서야 겨우 목적지이자 우리가 남쵸에서 하루를 보낼 타시 도르 사원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사원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티벳인들이 운영하는 텐트로 가  풀려고 들어가는데 하늘에서 갑자기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빗줄기가 거세진다. 그렇게 비가 내리자 시작하자 서서히 한기가 몰려왔다. 우린 어쩔 수 없이 티벳인들의 숙소에서 난로 곁에서 몸을 녹이며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그렇게 몸을 녹이다 난로의 연로로 쓰이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니 말로만 듣던 말린 야크똥이 아닌가? 수목한계선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티벳의 고원지대에선 나무를 땔감으로 쓰는 것이 힘들어 야크똥을 말려 연료로 사용한다고 하는데 그것을 직접 목격하니 신기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밖에선 비가 서서히 그치며 흐렸던 하늘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가 완전히 그치자 우린 텐트로 가 잠시 눈을 붙이고 좀 쉰 후에 주변을 둘러보기로 하고 다들 침상에 몸을 맡기고 잠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머리가 너무 아프고 몸에 힘이 없었다. 젠장. 고산병이었다. 겨우 몸을 일으켜 다른 일행을 보니 다들 고산병 증세가 보였다. 아마 너무 이른 시간에 움직이다 보니 잠도 부족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한데다 라싸보다도 1000m나 높은 곳이니 몸이 버텨내지 못한 거 같았다. 하긴 컨디션이 좋은 상태라도 힘들 수 있는데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일행들과 얘기해 그간의 경험처럼 좀 더 휴식을 취하면 좀 괜찮을 거 같아 우린 다시 침상에 몸을 눕히고 억지로나마 잠을 청했다. 그렇게 잠깐 잠이 들었다 싶었지만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잠도 더 이상 안오고 아프지만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호숫가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웅대한 남쵸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티벳을 상징하는 동물인 야크가 한가로이 쉬고 있다.


 발이 마치 천근이라도 되는 것처럼 무거웠다. 아마 보통의 경우였다면 그냥 텐트에 누워 있었겠지만 남쵸의 풍경은 고산병의 고통속에서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도록 강요했다. 난 당시 걷는 것이 이렇게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겨우 2,300m를 가는데 30여분이 걸렸다. 마치 그것은 걷는다기 보다 억지로 몸을 끌고 가는 느낌이었고 내 정신상태는 비몽사몽 정신이 없었다. 솔직히 당시 구도고 뭐고 그냥 셔터를 눌렀다. 나중에 한국으로 와 사진을 정리했을 땐 말도 안되는 상태의 사진이 전체의 반이 넘었다. 노출이니 조리개니 신경을 쓸 정신상태가 아녔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면 분명 나중에 후회할 것이란 생각이 날 계속 걷게 했다.

티벳의 성호답게 호숫가엔 누군가 소원을 빌었을 돌탑을 쉽게 볼 수 있다.


 호숫가를 따라 2,300m 걸으니 너무 힘들어 쉴겸 해서 돌탑들이 옹기종기 쌓인 곳에 자리를 잡고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니 아픈 와중에서도 따뜻한 햇살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기분이 좋아진다. 주머니 손을 넣으니 레모나가 하나 있어 꺼내 먹으려 보니 포장이 터질듯이 부풀어 있었다. 고도가 높다보니 기압이 낮아 발생한 현상이었다. 그렇게 레모나 하나를 입에 넣고 그냥 그 자리에 앉아 멍하니 몇십분을 있었을까 왠 중국여자 하나가 다가와 말을 걸며 카메라를 건네며 사진을 한장 부탁한다. 평소의 경우라면 별거 아닌 부탁이었지만 당시엔 너무 힘들고 귀찮아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짜증이 났지만 겉으론 내색하지 않고 사진을 찍어주고 나도 사진 한장 부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비몽사몽을 때 찍은 사진이라 포커스나 제대로 맞았을지 걱정이다. 아마 그 중국여자가 운이 없었으면 포커스가 그 여자의 얼굴이 아니라 뒤에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난 더 이상 저렇게 걸을 수 없었다.


하늘과 물 그리고 구름이 하나가 되는 곳, 그 곳이 남쵸다.


나도 조심스레 가족의 건강과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도록 소원을 빌었다.


저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


 호숫가를 둘러보고 다시 발걸음을 숙소쪽으로 옮기니 숙소 앞에 이선생님께서 나와 계셨다. 선생님께 말을 건냈지만 영 안색이 좋지 않으신 거 같았고 힘들어 하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숙소로 이선생님과 돌아와보니 다른 두분의 상태로 악화되어 있었다. 상황은 계속 더 나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우린 결국 얘기를 나눈 후 남쵸에서 1박하려던 처으의 계획을 포기하고 저지대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이대로 있다간 다들 상태가 더 나빠질 듯 하여 남쵸에 남아봤자 몸만 힘들다는 생각에 내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는 없었다.  

남쵸를 떠나며 아쉬움에 계속 뒤를 돌아봤다.


 기사 아저씨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우린 차에 몸을 실었다. 남쵸를 서두러 떠나야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단 안도감도 들었다. 하지만 차가 서서히 남쵸에서 멀어지수록 아쉬운 마음이 진해졌고 우린 계속 멀어져 가는 남쵸를 뒤돌아 봤다. 아주 잠깐이었지고 힘든 경험이었지만 아마 남쵸의 아름다운 풍경은 결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티벳을 다시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땐 남쵸를 꼭 다시 찾을 것이다.

차창밖의 풍경을 뒤로 하며 언젠가 다시 돌아오길 기원했다.


 남쵸를 떠난지 얼마 안되어 서서히 그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져 간다. 아쉽다. 아니 안타깝다. 하지만 우리가 탄 차는 그런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라켄라로 향했다. 이젠 남쵸으 모습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남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아쉬운 마음이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당장은 우리의 몸을 추스르는 것이 우선이라 우선 남쵸에서 가장 가까은 마을이자 상대적으로 저지대인 담슝(Damxung)으로 향했다. 저지대인 담슝에 도착했지만 지끈거리는 두통은 그대로다. 그나마 노점에서 산 사과로 배라도 채우니 그나마 좀 나아졌지만 아직도 힘들다. 결국 밤에 겨우 라싸에 도착해 숙소의 침대에 눕자 금새 잠이 들었다.

14대 달라이라마의 흔적이 남아있는 탁텐 미규 포트랑.


 남쵸에서 돌아온 다음날 일어나니 약간의 두통이 있지만 어제 정돈 아닌지라 난 일행 중 한명인 훈이형과 함께 라싸내에 있는 달라이 라마의 여름 궁전인 노불링카(Norbulingkha)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노불링카 입구에 내려 티켓을 사고 들어가니 여기저기 공사판이라 약간 당황스러웠다. 그러한 곳들을 지나 우린 우선 지금이 현 달라이라마인 14대 달라이라마가 세운 탁텐 미규 포트랑(Takten Migyu Potrang)으로 향했다. 이곳엔 달라이라마가 사용하던 물건들이 그가 떠날 때 그대로의 상태로 전시되어 있는데 의외로 서구의 현대적인 물건들이 많은 것이 흥미롭다. 14대 달라이라마는 어린 시절 서구 문명에 흥미를 느꼈던 사실을 얘기하 적이 있는데 그 흔적들이라 할 수 있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티벳에서의 7년'에서도 이러한 달라이라마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영화의 실제 모델인 하인리히 하러(Heinrich Harrer)는 영화에서처럼 1950년대에 달라이라마가 작은 영화관을 만드는 것을 돕기도 했다고 한다. 

탁텐미규포트랑의 옆에 위치한 작은 호수에 자리한 정자.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던 티벳 아이들.


 탁텐 미규 포트랑과 그 앞의 정자를 나와 노불링카를 둘러보지만 솔직히 그리 눈길을 끄는 것도 없고 여기 공사가 진행중이라 난잡한 느낌이었다. 당시가 서장자치구 50주년인가 되는 해인지라 가을에 후진따오를 비롯한 중국지도부들이 대거 티벳을 방문 예정이라 티벳 여기저기서 공사중이었는데 노불링카같이 많은 곳이 공사중인 곳은 처음이었다. 훈이형과 난 결국 이리저리 돌아다녀 봤지만 실망스러워 그냥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사람들의 노래 소리가 들렸다. 우린 그 노래 소리에 이끌려 그곳으로 가보니 다수의 티벳인들이 박자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그 중에서 일하던 이들이 우릴 발견하고 우리에게 다가와 뭐라 말을 거는데 뭐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나? 그냥 티벳어로 인사를 하니 그중 아이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보인다. 간단한 중국어와 영어로 대화를 시도해보지만 모두가 허사인지라 아쉽다. 티벳인들은 상당수가 중국어를 못한다. 뭐 이건 나도 중국어래봐야 숫자 몇개와 문장 몇개가 다니 어차피 소용이 없지만 말이다. 영어야 말할 필요도 없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가서 제일 재밌는 것인데 대화가 안되니 아쉬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