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31 04:49 Travel/티벳




 이른 아침 아니 새벽이라고 불러도 좋을 시각에 우린 어둠을 뚫고 시가체를 출발했다. 오늘은 초모랑마 그러니까 에베레스트산의 베이스캠프(이하 E.B.C.)까지 가야했기에 서둘러야 했다. 이른 아침 티벳의 하늘은 우중충하다. 오늘은 특히나 어두운 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그러한 풍경을 뒤로하고 우리를 태운 차는 쉼없이 비포장길을 달린다. 중간에 라체(Lhatse)에 들려 점심식사를 하고 또다시 달린다. 그러던 어느 순간 우린 고불고불한 언덕을 올라 갸쵸라(Gyatso-la)에 이르렀다. 이곳의 고도는 해발 5220M. 차에 내리니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선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기 바쁘다. 우리도 이곳에 내려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며 기념사진을 몇장 남기고 이내 다시 출발한다.


 쉐가르(Shegar, 뉴 팅그리로 알려진 곳, 우리처럼 라싸에서 장무로 가는 일정을 2박 3일로 잡은 경우 쉐가르를 그냥 거쳐 가지만 장무까지 3박 4일 일정을 잡은 경우엔 보통 쉐가르에서 숙박을 하고 다음날 E.B.C.로 향한다.)에 들려 E.B.C 입장권을 구매하고 차는 계속 달린다. 작은 검문소를 거쳐 E.B.C.로 향하는 우리를 맞이하는 건 거칠게 퍼붇는 비였다. E.B.C.를 가는 도중 초모랑마를 비롯한 히말라야의 고산들을 볼 수 있는 전망대에 도착했지만 흐린 비구름에 히말라야의 고산들은 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과연 내일 E.B.C.를 가서 초모랑마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E.B.C.에 거의 다 와서 우린 차에서 내려야 했다. 이곳부터는 일반차량으로는 갈 수 없다고 한다. 초모랑마는 자연보호지구이기 때문에 이곳에서부턴 정해진 차량을 타고 롱북사원(Rongbuk Monastery, 해발고도 5030m) 으로 향해야 한다고 한다. 웃기는 건 롱북사원을 떠날 땐 우리가 탔던 차량이 롱북사원까지 들4어와 있다는 거. 아무튼 롱북사원으로 가기 위해 자리를 이동하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와중에 한편에서 쌍무지개가 떠오른다. 내일 날씨는 왠지 좋을 거 같았다. 하지만 롱북 사원으로 가는 차량안에서 밖을 바라보니 서서히 어둠이 깔리며 비가 더욱 거세지니 마음이 무거웠다. 롱북사원에 도착했을 땐 완전 어두운 밤이었다. 이곳에 도착해 우선 방을 잡고 식사를 하는데 속이 더부룩하다. 고도가 높아서인지 소화도 안되는 거 같고 잠도 안온다. 어렵게 잠을 자던 중 갑자기 일행중 한분이 심호흡을 하신다. 걱정이 되어 물어보니 잠을 자는데 숨쉬기가 힘들다고 하신다. 그렇게 우린 어렵사리 잠을 청했다.


다음날 일어나 밖을 나오니 하늘이 흐리다. 어제 내린 비때문인지 날씨는 굉장히 추웠다. 롱북사원에서 E.B.C.를 가기 위해선 마차를 이용해야 한다. 직접 걸어가는 서양 친구들이 보였지만 마차를 타고도 꽤나 시간이 걸린단 얘기에 우리 일행은 마차 2대에 나눠타고 E.B.C.로 향했다. 마차를 타고 가며 주변 풍경을 둘러보니 어제 도착했을 땐 밤이라 몰랐지만 주변의 풍경은 굉장히 거칠었다. 아마도 수목한계선보다 훨씬 높기에 그런 거 같았다. E.B.C.에 가까워지지만 주변의 풍경은 크게 바뀌지않고 하늘은 흐리기만 했다. 게다가 생각 이상의 추위에 우린 오들오들 떨어야만 했다. 


E.B.C.로 가는 길은 정말 흐린 하늘과 돌 그리고 추위밖에 기억이 안난다.


 E.B.C.에 도착했다. 그러나 초모랑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린 추운 날씨에 그런것도 잊고 급히 천막 하나를 골라 우선 다들 따뜻한 컵라면 하나로 추위를 녹였다. 어느 정도 추위를 녹이고 밖으로 나와보니 그때서야 주변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여행자들을 상대하는 천막들이 난잡하게 자리잡은 모습만이 눈에 들어올뿐이고 초모랑마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우린 실망감에 바로 다시 롱북사원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우리가 타고왔던 마차의 마부를 찾아 다시 마차에 몸을 실었다.


 다시 롱북사원으로...


 실망감을 안고 롱북사원으로 향하던 중 어느 순간 하늘을 보니 푸른 하늘이 조금 모습을 드러낸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서서히 구름이 걷히며 설산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렇다. 바로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곳, 초모랑마가 그 모습을 우리에게 드디어 드러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 기쁜 마음에 우린 잠시 마차를 멈추고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봤다.


 실망감을 안고 롱북사원으로 향하던 중 어느 순간 하늘을 보니 푸른 하늘이 조금 모습을 드러낸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서서히 구름이 걷히며 설산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렇다. 바로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곳, 초모랑마가 그 모습을 우리에게 드디어 드러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 기쁜 마음에 우린 잠시 마차를 멈추고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봤다.



롱북사원에 도착해서 바라본 초모랑마. 



롱북사원에 도착해서도 우린 계속 초모랑마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지만 그 시간은 짧기만 했다. 이젠 이곳을 떠나야 한다. 이제 겨우 초모랑마의 모습을 확인했지만 오늘내로 우린 국경 도시인 장무(Zhangmu)에 도착해야 했다. 티벳에선 우기에 해당하는 여름인지라 짧게나마 초모랑마의 모습을 볼 수 있던게 행운인지 아니면 짧은 시간밖에 볼 수 없던게 불행일지 모르겠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린 차에 올랐다.


 E.B.C.를 출발해서 올드 팅그리(Old Tingri)에 이르는 길은 지금까지의 비포장도로와는 비겨도 안될정도로 거친 길이었다. 아니 과연 여기가 길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특히나 E.B.C.를 출발하고 그나마 제대로 된 비포장 도로가 나오기 전까지 우린 길의 흔적이라곤 타이어자국이 조금 보이는 곳을 달려야만 했다. 


어제 날씨와 다르게 오늘은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이제 어느 정도 비포장도로다운 길을 달린다싶을 때 우리옆을 말에 탄 티벳인 한명이 지나간다. 이 길을 달리며 간만에 만나는 스치던 인연이었다. 나는 그를 돌아봤고 그도 나를 돌아봤다. 


여기서부턴 그나마 달릴만 했다. 사진은 2박 3일동안 우리와 함께 했던 랜드크루저. 안전벨트따위 없다.


뒤를 돌아보는데 길의 흔적같은 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올드 팅그링에서 잠시 간단하게 식사와 휴식을 취하고 다시 신나게 달리던 차가 갑자기 멈춘다. 타이어가 펑크난 것이었다. 그렇게 우린 의도치않게 길가에 잠시 주저앉았다. 기사 아저씨가 타이어를 교체하는 동안 몇대의 차가 우릴 지나간다. 시간이 조금 흘러 타이어 교체가 끝나고 우린 다시 차에 올랐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지그재그로 된 고갯길을 올라 우린 라룽라에 올랐다.


 라룽라(Lalung-la)는 해발고도가 5200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개 중 하나다. 이곳에선 히말라야의 설산을 감상하기에 좋은 곳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을 땐 아쉽게도 설산의 모습은 구름에 가려 그 모습을 어렴풋이 드러낼 뿐이었다.. 


 티벳의 바람이 잘 부는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처럼 이곳, 라룽라에서도 오색 타르쵸가 펄럭인다. 이곳부턴 계속 내리막길이다. 이곳부터 니얄럄(Nyalam, 3750m)을 거쳐 장무(Zhangmu,2300m)까지 오늘내로 가야하는데 이제부터 대략 3000m를 몇시간동안 내려가는 것이다. 

 니얄람에 도착해 검문소를 지나니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검문소를 출발해 다시 장무에 이르는 길. 그 길은 빗속을 헤쳐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난  그곳에서 너무나도 환상적인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비가 내리고 구름에 뒤덮인 시야 사이로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폭포같은 수많은 환상적인 폭포들과 그동안 티벳에서 볼 수 없었던 푸르른 나무들과 기암절벽들 그리고 요동치는 물소리. 그것은 산수화 아니 그것보단 마치 환상같았다. 나뿐 아니라 우리 일행 모두 그 광경에 넋을 잃었다. 지금 돌이켜 보건데 내가 후에 다른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며 많은 좋은 풍경들을 봤지만 결코 이때의 광경에 비할 수 없었다. 그때의 내 기분은 꿈을 꾼 느낌이었다. 게다가 엄청나게 쏟아지는 빗속이었고 빠르게 달리는 차에서 사진을 찍는 것도 불가능해서 남겨진 사진조차 없었다. 그래서 더 꿈같았다. 우리 일행 모두 제대로 된 사진 한장 건질 수 없었다. 그래서 더 꿈같다. 하지만 그 광경은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이런 환상같은 풍경도 서서히 어둠에 잠식당했다. 어느새 주변은 완전히 어두워졌고 차는 전조등을 밝히며 어둠을 헤쳐 계속 꼬불꼬불한 내리막을 달렸고 우린 네팔과 접한 국경도시인 장무에 도착했다.


 장무는 중국의 국경도시로 네팔의 코다리(Kodari)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씻고 숙소를 나오니 이전의 티벳에서 느껴지는 풍경은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장무란 도시는 전혀 다른 느낌의 도시였다. 게다가 어제부터 느낀 것이었지만 니얄람 정도 내려오니 티벳에서 느꼈던 코안의 건조함이 완전히 사라졌다. 과장되게 말해서 코안이 촉촉해지는 느낌이었다.


 일행들과 함께 느긋하게 식사를 마치고 나니 다시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숙로를 돌아와 배낭을 메고 중국의 출국심사소쪽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간단하게 출국심사를 받고 두 나라의 국경을 이루는 우의교로 차를 타고 얼마 가지 않아 우의교가 보인다. 사진을 찍으려 하니 중국 공안이 제지를 해 그냥 우의교를 건너 네팔 땅을 향했다. 중국에 있을 때 시각이 12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는데 네팔로 넘어가는 순간 우린 시계를 2시간 15분 전으로 돌려놨다. 신장위구르 자치구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동일 시간대를 쓰는 중국과 네팔은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시차가 무려 2시간 15분이나 나기에 생기는 일이었다. 국경심사소에서 30달라를 지불하고 비자를 받고 간단한 입국심사를 거쳐 드디어 네팔에 입성했다. 우린 수많은 삐끼들 중 하나와 따라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로 가는 차를 타기 위해 흥정을 벌였고 몇번의 옥신각신 속에 흥정은 이루어지고 우린 차에 올랐다.


우의교에서 바라본 두 나라의 국경이 되는 강. 어제 내린 많은 비로 인해 물살이 거세다.


 차를 타고 스치는 네팔의 풍경은 티벳과는 완전히 달랐다. 산이 많은 건 공통된 사항이었지만 그 느낌이 달랐으며 이곳은 몬순의 영향으로 하루에도 수차례 비가 내려 주위가 푸르름으로 가득차 있었다. 티벳과는 달리 푸른 하늘을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색다른 모습들이 내 눈을 즐겁게 해줬다.


 차를 타고 가던 중 기사 아저씨가 한쪽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르킨다. 아저씨가 하는 말로는 네팔에서 제일 유명한 번지 점프대라는데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곳이란다. 물론 나도 그 아저씨의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차를 잠시 멈추고 번지 점프대의 중앙으로 가려하니 철교가 흔들흔들한 것이 그냥 다리가 후들거린다. 철교 중앙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까마득하다. 난 누가 돈을 준다고 해도 도저히 못뛰어내릴거 같았다. 멍하니 아래를 잠깐 보고 있으니 어질어질할 정도다


다시 카트만두를 향해...

 

 

 

 코다리를 떠나 카트만두에 도착하니 이미 늦은 오후였다. 밖은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 우선 몸을 씻고 비행기 리컨펌을 위해 로얄네팔 사무소로 향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니 그날이 토욜일이라 업무는 이미 끝나있었고 우린 어쩔수 없이 공항으로 가 겨우겨우 리컨펌을 했다. 하지만 나중에 막상 비행기를 타니 비행은 반이상 텅텅 비어있어 이날의 삽질이 참으로 아쉬울 뿐이었다.



 다음날도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오늘이 사실상 네팔의 마지막 날이건만... 숙소에서 멍하니 밖을 보다 뭐 하나라도 좀 봐야겠다는 마음에 당시 숙소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던 세계에서 가장 큰 불탑이라는 보우더너트를 보러 갔다. 비가 축축하게 내리는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사진을 찍기도 뭐하고 구경하기도 참으로 뭐하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보우더너트 주변을 조금 둘고 숙소로 돌아와 체크아웃을 마치고 카트만두의 여행자 거리인 타멜로 가 어제 예약했던 숙소로 짐을 풀고 라싸에서 카트만두까지 함께 했던 하선생님과 김선생과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며 회포를 풀었다. 서로의 연락처를 나누고 나는 숙소의 내방으로 돌아와 내일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야 했기에 짐을 완전히 꾸리고 옷도 입은채로 잠이 들었다.


 이른 아침 숙소를 나와 택시를 타고 공항에 도착해 간단한 출국심사를 거쳐 방콕행 로얄네팔 항공기에 올랐다. 비행기가 이륙한지 얼마 되지 않아 비행기 좌측으로 히말라야의 전경이 펼쳐진다. 그때 방송이 나오며 기장이 때마침 설명을 해주는데 영어도 짧은데다 산에 대한 지식도 부족한 나인지라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하나만은 확실했다. 내가 그때 창밖으로 보던 히말라야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답고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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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중국 | 라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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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larepa
2012.05.31 04:49 Travel/티벳

 이제 라싸를 떠나야 할 시간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일주일 정도 전에 떠나야 했겠지만 일정에 문제가 생겨 네팔 일정을 거의 포기하고 라싸에 원치않게 오래 머물러야 했는데 이제는 라싸를 떠나 네팔로 떠나야 한다. 이른 아침 네팔행 랜드쿠루저를 타고 가기로 한 하선생님 내외와 이선생님과 함께 차에 올랐다. 얼마가지 않아 익숙했던 라싸의 모습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이젠 초모랑마(에베레스트산) 베이스캠프를 거쳐 네팔의 카트만두로 향하는 3박 4일의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라싸를 떠난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을 무렵 차가 고갯길을 갈지자로 계속 오른다. 주변에 보이는 풍경이라곤 구름으로 생각되는 그저 하얀 세상이다. 티벳의 여름의 이른 오전의 하늘은 언제나 구름으로 뒤덮여있다.(티벳의 여름은 우기에 해당되는데 보통 밤에 주로 비가 내리는데 그 양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리고 정오무렵이 되면 서서히 구름이 걷히려 푸른 하늘을 보여준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고개의 정상에 이르러 잠시 차가 멈췄다. 차에 내려 아래를 내려다 보니 우리가 뚫고 온 구름과 팔자 좋게 풀을 뜯고 있는 야크들의 모습이 보인다.



네팔로 가는 우정공로를 따라 계속 길을 달리니 얌드록쵸(티벳의 4대 성호(聖湖)의 하나)가 보이는 캄바라 언덕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얌드로쵸를 바라봤지만 날씨가 흐려서인지 기대와는 달리 조금 실망스런 모습이었다. 역시 아무리 멋진 풍경도 날씨가 도와주지않으면 별무 소용없는 거 같다. 캄바라 언덕에서 기념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길을 나선다. 얌드록쵸를 끼고 달리다 호수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얼마를 달렸을까? 시야에 작은 마을 하나가 나오는데 이 마을의 이름은 나가체(Nagartse)라고 한다. 이 나가체에 잠시 들러 이른 아침에 길을 떠나느라 굶주린 배를 채우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휴식을 마치고 나가체에서 차가 출발한지 30여분 쯤 되었을까? 어느 순간 우리 눈앞에 거대한 빙하의 모습이 펼쳐진다. 차에서 내리니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이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 빙하의 이름은 카롤라 빙하(Kharola Glacier)라고한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이 카롤라 빙하가 점점 녹고 있다고 한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와 검색을 해보니 2035년쯤이면 이 빙하가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다고 하나. 언제 다시 티벳을 방문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곳을 다시 찾을 때 과연 난 이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이 빙하뿐 아니라 히말라야 전역의 빙하가 녹고 있다고 하는데 이 빙하들이야 말고 수많은 사람들이 의지하며 살아가는 강들의 시작인 것을 하면 결코 단순한 환경재앙이라 치부할 수 없을 것이다.



 티벳의 여름은 유채꽃이 만발한다. 우기에 속해 오전과 밤에는 잔뜩 구름이 하늘을 뒤덮지만 정오 무렵이 되면 서서히 구름이 걷히며 따스한 햇살이 유채꽃이 만발한 곳을 비추면 아름다운 색의 조화가 만들어진다. 나에게 티벳의 여름 이미지를 떠올리라고 한다면 바로 위 사진이 바로 나의 이미지다.




 카롤라 빙하에서 출발해 1시간여를 가면 빙하가 녹아 옥빛으로 빛나는 호수를 만난다. 이곳은 낭추계곡(Nyang chu Valley)이라 불리는 곳인데 이곳에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티벳의 물 부족과 수력발전을 위해 댐을 만들었고 이 호수는 이런 결과로 만들어진 인공호수다.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지만 인공호라지만 낭추계곡의 풍경과 옥빛 호수의 조화가 아름답다. 이곳이 잘보이는 언덕에 오르니 누군가 쌓았을 돌탑과 타르쵸의 흔적이 보였다. 나도 그 돌탑에 무사귀환을 빌며 돌을 살며시 올려놓고 발길을 돌렸다.


 낭추계곡을 지나 얼마 안 가면 갼체(Gyantse)에 도착한다. 낭추계곡에 자리한 중국의 침략 이전 티벳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였다고 한다. 여행자가 이 도시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펠코르 최데 사원(Pelkhor Chode Gompa)과 갼체 쿰붐(Gyantse Kumbum) 그리고 갼체종(Gyantse Dzong)을 보기 위해서다. 갼체에 도착해 우선 펠코르 최데 사원과 갼체 쿰붐을 구경하기 위해 표을 끊고 들어가면 정면으로 마니차와 함께 펠코르 최데 사원의 대법당의 모습이 보인다. 이 사원은  1418년에 축조되었다고 하는데 특이하게도 사캬파, 부파(Bupa 사캬파의 한 갈래), 겔룩파의 세 개 종파에 속한 사원들이 여러개 있었다고 한다. 초기에 사캬파의 사원이었으나 겔룩파의 세력이 커지면서 펠코르 최데 곰파의 주요 세력도 겔룩파로 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성기에는 15개에 이르는 긍원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대부분 파되되어 겨우 2개의 승원만이 남아있다고 한다. 


 아마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이 곳 갼체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사진의 갼체 쿰붐을 보기위해서 일 것이다. 갼체 쿰붐은 15세기에 건축되었으며 펠코르 최데 사원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이 사원의 양식은 전형적인 네팔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그 이름은 '10000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거대한 스투파에는 112개의 법당이 존재하며 현재 그중에서 30여개가 개방되어있다. 스투파의 벽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올라가며 그 법당을 돌며 각각의 법당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양한 불상과 벽화가 존재하는데 티벳을 여행할 때 다른 사원이나 스투파들과는 달리 독특한 형태인지라 꽤나 진지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갼체쿰붐 앞에서 오체투지를 올리고 있는 티벳인.


펠코르 최데 사원과 갼체쿰붐을 둘러보고 난 후 갼체종(Gyantse Dzong)을 바라본다. 마음 같아서는 갼체종에 오르고싶었지만 일행이 있고 저녁이 되기전에 시가체에 도착해야 하디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차에 올랐다. 참고로 갼체종은 14세기 초에 건축된 요새로 얄룽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팔코르찬(Palkhortsan)의 궁이 있던 자리에 후에 이 지방 영주였던 팍파 팔 상포(Phagpa Pal Sanpo)가 성을 지으며 요새를 건축했다고 한다. 네팔의 구르카(Gurkha) 왕국과 라다크(Ladak) 왕국 등의 침공을 격퇴했던 난공불락의 요새였지만 1904년 인도에서 북진한 영국의 침공을 받아 요새는 함락되고 이곳을 지키던 1000여명의 티벳인들은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고 한다.


이제 오늘의 목적지인 시가체를 향해 고고~ 갼체부터 시가체까진 포장도로인지라 비포장도로로 피곤한 내 엉덩이가 환호를 지른다.


 오후 늦게 시가체(Shigatse)에 도착해 숙소를 정하고 바로 앞의 타쉴훈포(Tashilhunpo) 사원으로 향했다. 타쉴훈포 사원은 겔룩파의 주요사원중의 하나로 1447년에 총카파의 제자 겐덴 드루프(Genden Drup)가 1447년 설립한 사원으로 판첸라마가 거주하는 사원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거주하는 11대 판첸라마는 중국 정부가 세운 꼭두각시 가짜 판첸라마일 뿐이고 달라이라마가 1990년 지명한 진짜 11대 판첸 라마는 어린 나이부터 지금까지 중국 정부에 의해 억류되어 있다고 한다. 억류 당시 나이가 7~8살 정도로 알려졌는데 당시 세계에서 가장 어린 정치범으로 현재 어디에 억류되어 있는지 모르며 생사도 불분명하다. 아무튼 이렇게 꼭두각시가 운영하는 타쉴훈포 사원이지만 문화혁명 당시 다른 티벳의 사원들과는 달리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아서 그 시설들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표를 끊고 타쉴훈포 사원으로 들어가금빛으로 치장된 지붕을 한 건물들과 탕카를 거는 거대한 흰벽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왼쪽에 난 길을 따라 26미터의 마이트레야(Maitreya, 미륵)상이 있는 잠캉 쳰무(Jamkhang Chenmo) 등을 거쳐 여러 사원을 둘러보다 타쉴훈포 사원에서 규모가 가장 큰 켈상(Kelsang Temple Complex) 사원에 이르니 대법당 앞에 많은 여행객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보였다. 예불 시간에 맞춰 그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었다. 우리도 잠시 주변에서 사진을 찍으며 기다리고 있으니 어린 승려들이 법당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어린 승려의 모습. 


승려들이 법당으로 들어가자 우리도 조심스레 그들을 따라 법당으로 들어가 주변에 자리를 잡았다. 예불이 시작되고 불경외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사진을 찍는 것은 실례인 거 같아서 포기. 자리에 앉아 우두커니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을 즈음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 법당을 빠져나왔다. 법당을 나와 다시 정문쪽을 내려오며 사원을 좀 더 구경하고 타쉴훈포 사원을 나섰다. 숙소에 도착해 바로 옆의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숙소 주변을 둘러보며 시가체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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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31 04:49 Travel/티벳
  


 사몌를 다녀오고나서 그동안 같이 지냈던 일행이 모두 떠났다. 훈이형은 회사때문에 가장 먼저 한국으로 떠나야 했고 나머지 분들은 내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카일라스를 향해 떠났다혼자 남겨진 난 멍하긴 했지만 또 다시 다른 사람들과 친해져서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일행이 떠나고 신세를 졌던 오선생님 방에서 빈둥거리다 이무형 선생님과 함께 간덴 사원에 다녀오기로 했다간덴 사원은 티벳 종파 중에서 가장 큰 종파인 겔룩파(달라이라마가 속한 종파)의 창시자 총카파가 1417년 설립한 사원으로 티벳에서 손꼽히는 사원 중 하나이다이른 새벽에 일어나 6 30분경 버스를 타고 2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 간덴에 도착했다우린 우선 사원 구경 전에 사원 주변을 도는 코라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티벳에서 코라를 돌 때는 시계 향으로 돈다. 티벳 고유의 종교인 뵌교에선 반대로 코라를 돌 때 시계 반대 방향으로 코라를 돈다고 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면 이내 아래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코라를 따라 걸으며 우린 그 멋진 풍경에 말을 잊었다. 낮게 깔린 구름 사이로 비추는 태양은 우리 아래 땅을 아름답게 비춰주었다. 마치 우린 천상에서 지상을 내려보는 신선이 된 듯 그 풍경에 취해버렸다.


 당시의 빛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구름 사이로 비추는 빛이 내 시야의 모든 사물을 환상처럼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그 빛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려 너무나 아쉬워서 마치 순간 꿈을 꾼 기분이었다. 언제 다시 그런 빛을 만날 수 있을까?


 코라를 도는 스님과 티벳인가족. 뒤쪽의 가족은 후에 옆의 언덕을 오르고 나서 친해서 버스 정류장에서 헤어질 때까지 같이 다니기도 했다.


 간덴 사원을 상징하는 것 중의 하나가 꼬불꼬불한 길이다. 버스를 타고 간덴 사원을 가다보면 한참을 이 길을 올라야 한다.


 코라를 돌아 다시 간덴 사원이 보이기 시작한다.


 티벳에서도 몇 손가락에 꼽히는 사원답게 그 규모가 상당하다.



 코라를 돌다 어느 건물에 이르니 갑자기 어린 스님들이 쏟아져 나온다. 한 스님께 어렵사리 물어보니 예불을 드리고 나오는 스님들이라고 한다. 예불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기회가 몇십분 차이로 내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아쉬운 마음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사원을 대충 둘러보고 우리는 사원 옆의 언덕에 올라보기로 했다. 그러나 보기엔 분명히 언덕이었는데 올라보니 결코 언덕이 언덕이 아니었다. 아마도 간덴 사원이 해발 4300미터에 위치한 고산지대라 산소가 부족해서 그랬던 거 같은데 언덕은 조금만 올라도 숨을 헐떡이게 만들었다. 우린 걷다 쉬다를 반복해야만 했다. 그러기를 1시간 가량 되어 우리가 산 중턱에 이르렀을 무렵 우린 환상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언덕의 중턱에서 쉬면서 여유를 가지고 아래를 내려다 보니 아름다운 풍경이 장관이다. 힘들었지만 이런 아름다운 풍경이 있기에 정상까지 다시 힘을 내서 걸음을 옮겼다. 


점점 시야가 넓어진다. 아래 쉬고 있는 두 티벳 친구들은 우리보다 한참 늦게 출발했는데 금방 우리를 따라잡았다. 티벳에선 꼬마 아이도 우리들보다 날라다녔다. 여기서라면 중국이 브라질을 축구로 꺽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지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월드컵 예선 때 볼리비아 가서 고전하는 거 보면...
 


아름답단 말밖에 이 풍경을 표현할 수 없다. 미치도록 멋진 풍경이었다.



 드디어 정상에 오르니 역시나 티벳 아니랄까봐 오색 타르쵸가 정상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언덕 정상에 오르니 티벳인 가족이 우리를 쳐다본다. 아이들과 대화를 시도해보니 다행히 간단한 영어를 할 줄 알아 어설프게나마 대화를 나누며 정상에서 잠깐의 여유를 즐겼다. 이내 라싸로 가는 차 시간이 다가오자 우린 너무나 아쉽지만 천국을 떠나 지상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내려오며 다시 눈앞의 풍경을 음미하며 마음에 담아두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주차장에 도착해 티벳 가족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우린 라싸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하면 뒤로 멀어지는 간덴 사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떠나기 너무나 아쉽다. 아쉽다... 아쉬워...



간덴을 다녀온 다음날 난 혼자서 세라 사원으로 향했다. 사원 구경을 위해서 아니라 유명한 티벳 승려들의 토론을 하는 토론의 정원 최라를 보기 위해서였다. 시간에 맞춰 버스를 타고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최라에 이르니 나말고도 여러 여행자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조금 기다리니 예정 시간에 맞춰 다수의 승려들이 나오더니 자리를 잡는다.


 티벳 승려들의 토론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싸우는 사람들처럼 시끌벅쩍하다. 질문을 하는 승려가 온몬을 이용해 박수를 치며 질문을 하면 앉아서 답하는 승려는 역시 큰 소리로 응답을 한다. 이러한 행위를 반복하다 어느 순간 위치를 바꾸기도 한다. 이 토론을 처음 볼 때는 웃기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나중엔 그러한 생각이 사라질 정도로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는 진지했다.


 많은 승려들 중에서도 가장 인상에 남았던 라마승.



 최라가 끝나고 세라 사원을 둘러보지만 이미 티벳에서만 2주가량 지내서 봐 온 것이 사원들이라서 그런지 다 그게 그거 같은 기분에 대충 둘러보고 세라 사원을 나왔는데 이는 아마도 티벳 불교에 대한 내 지식이 짧기에 그러한 생각이 든 거 같다. 좀 더 사원에 대해 공부하고 갔다면 좋았을 거 같은 생각이 지금은 내 머리를 채운다.


 간덴을 같이 다녀왔던 이선생님과 함께 다녀온 티벳 박물관. 티벳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꼭 가봐야 할 곳이지만 여행 기간이 짧다면 그냥 패스하길 권한다.


라싸를 떠나기 하루전 마지막으로 드레풍(데뿡) 사원을 가봤다. 날씨가 흐린 것이 참으로 우중충했다. 버스에 내려 사원까진 꽤 걸어야 했고 사원에 도착하니 멀리 산의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탕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규묘면에서 손꼽히는 사원이지만 여타 다른 사원에 비해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의무감으로 여기저기 구경을 하지만 솔직히 큰 감흥은 없었다. 그래도 왔으니 젤 중요한 건축물들은 빼놓지않고 둘러봤다.


 드레풍 사원의 중심인 건물. 여기서 잠깐 멍을 때리고 있던 때 어느 티벳 아이들이 다가와 사진 좀 찍어달래서 찍어줬는데 가족 중에 꼬마 둘이 내가 한국 사람이라 하니 내게 관심을 드러낸다. 


 이 가족의 안내를 받아 사원을 둘러보니 아까 혼자 둘러볼 때의 느낌과는 달리 즐겁다. 특히 사진엔 안나왔지만 이 아이들의 오빠되는 아이가 간단한 영어를 할 수 있어 참으로 고맙게도 무료했던 드레풍 순례가 재밌게 바꼈다. 나중에 사원을 내려와 버스 타는 곳까지 같이 갔는데 헤어질 땐 꽤나 아쉬웠다. 간덴에서 만났던 가족도 생각이 나고...


 드레풍 사원에서 버스를 타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포탈라궁이었다. 처음 라싸에 도착했을 때 포탈라궁 앞 광장은 시장자치구 40주년을 기념해 광장주변을 완전히 새로 꾸미는 공사중인지라 출입이 안되었는데 라싸를 떠나지 몇일 전에 공사가 완전히 끝나 떠나기 전에 한번 들렀다. 광장에 서서 포탈라궁을 바라보니 광장의 한가운데 펄럭이는 중국의 오성홍기가 눈에 제일 먼저 들어왔다. 씁쓸한 기분이었다. 과거 경복궁 앞의 조선총독부가 건축되었을 때 그 모습을 보던 우리네 선조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깨끗하게 정리정돈된 광장엔 많은 이들이 나들이를 나왔지만 내 기분은 그저 아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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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31 04:48 Travel/티벳




 남쵸와 노불링카에서 실망을 안고 왔던 우리는 사몌(Samye)에 들려 일박하고 오기로 하고 승합차차를 하나 빌려 사몌로 떠났다. 이번 여행엔 남쵸 때 빠졌던 두 누나도 함께 했다. 사몌는 티벳 최초의 사원인 사몌 사원이 자리잡은 곳으로 모래언덕으로 이루어진 사몌 계곡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곳에서 몇시간 떨어진 곳엔 티벳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알려진 윰불라강이 있다. 이러한 사몌를 가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차를 타고 멀리 돌아가는 방법이고 다른 한 방법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으로 대부분의 경우에 이용하는 방법으로 차를 타고 갔다가 선착장에서 배를 이용해 얄룽 창포(Yarlung Tsangpo)를 건너 거기서 다시 차를 빌려타고 30분 정도 모래언덕을 지나 사몌로 향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당연히 시간도 절약할 수 있고 선상여행도 즐길 수 있는 후자의 방법을 이용해 사몌로 가서 다음날 차를 이용해 체탕을 거쳐 윰믈라강을 보고 라싸로 돌아오는 루트를 이용하기로 했다.
 



 얄룽 창포를 따라 가다 나오는 선착장에서 차를 멈추고 정박해 있던 허름한 배에 올라 얄룽 창포를 건넜다. 물이 온통 흑탕물이었지만 불어오는 바람과 푸른 하늘과 구름이 기분을 좋게 해줬다. 얄룽 창포를 건너 배를 대고 내리니 모래언덕이 펼쳐진다. 여기서 우린 차를 한대 빌려 사몌에 가기로 했다. 선착장에서 사몌까지는 30분 정도 거리인데 차가 좁아 남자인 나와 훈이 형이 뒷 트렁크에 타기로 했다. 사몌로 가는 길은 모래 언덕의 연속으로 뒷 트렁크에 탄 우리는 비명을 질러댈 수 밖에 없었다. 차가 들썩일 때마다 우리의 몸은 위아래로 출렁거렸고 우리의 허리는 비명을 질러댔다. 사몌에 도착하자 사원이 우리를 맞는다. 티벳 최초의 사원인 사몌 사원이었다. 8세기 후반에 건축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건축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사원도 문화혁명 당시에 많은 손상을 입어 1980년대 중반부터 사원을 재건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진행중에 있다. 


사몌 사원의 중심에 자리잡은 우체(대법당)


사몌 사원의 마니차.

 마니차는 속이 빈 원통에 불교경전 등을 말아넣은 것으로 휴대하며 손으로 돌리는 것부터 엄청난 크기의 다양한 크기가 존재한다. 이 마니차를 한 번 돌리는 것을 경전을 한 번 낭송한 것과 같은 의미로 생각한다는데 과거 문맹이 대부분이었던 티벳인들을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얘기도 있다. 즉 문맹인 사람들이 글을 읽을 수 없어 불경을 읽는 것이 불가능해 불경을 읽는 대신 불경이 담긴 마니차를 돌리면 불경을 읽은 것처럼 불공을 쌓는다는 의미이다. 티벳을 여행하면 티벳인들이 손에 작은 마니차를 들고 계속 돌리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만다라를 본떠 만든 사몌 사원의 주변 모습.

사몌 사원의 정확한 건립시기는 알 수 없지만 대략 8세기 후반경으로 짐작되고 있다. 사몌 사원의 우체(대법당)에서 주변을 바라보면 사몌 사원의 전체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사몌 사원의 건물 배치는 여타 다른 티벳의 사원들과 그 궤를 달리한다. 사원 건물들의 배치는 우주의 진리를 표현한 만다라를 재현하고 있는데 사원의 중심인 우체가 수미산(=메루산)을 상징하며 그 주변을 둘러싼 부속건물들은 불교 우주관에서 바다, 육지 그리고 지하세계를 의미한다고 한다.



티벳의 수호신인 아발로키테스바라(천수관음보살)


 우체 안으로 들어가면 사원과 관련된 여러 인물들인 송첸 감포, 구루 린포체, 트리송 데첸왕 등의 모습을 한 상들을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 유독 나의 눈을 끈 것은 아발로키테스바라(천수관음보살)상이었다. 티벳에선 이 보살을 티벳의 수호신이자 달라이 라마를 이 보살의 화신으로 생각하여 티벳 불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유독 시끄러웠던 이 녀석.

 사몌 사원을 둘러보고 우체 입구에서 아직 나오지않은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동네 꼬마들이 우리들을 보고 몰려 들었다. 그때 난 레모나를 하나 입에 물고 있었는데 동네 아이들선이 레모나에 닿는다. 아이들의 시선이 내 입으로 자연스레 향하자 아이들에게 레모나를 하나씩 주었는데 아이들은 처음 그 레모나 특유의 새콤함에 얼굴을 찡그렸지만 그 뒷맛에 결국 포장안에 묻은 가루까지 혀로 깨끗이 닦아 먹는데 그 모습이 마냥 재밌었다. 아이들과 조금 놀다가  일행 모두가 나오자 우린 우리가 묶을 티벳인의 집으로 가 여장을 풀었다.


마을을 구경하다 만난 당나귀들.


 숙소에 여장을 풀고 마을 구경을 위해 길을 나섰다. 편안한 분위기의 사몌는 전형적인 티벳 농촌의 모습이었다.


마을의 뒷산에 올라 바라본 사몌의 전경.


 마을 뒷편의 언덕에 올라 바라본 사몌의 전경. 멀리 사몌 사원이 보인다.


얄룽 창포를 따라 가는 길.

 사몌에서 하룻밤을 지낸 우리는 아침 일찍 티벳에서 제일 오래된 건축물인 윰불라강으로 향했다. 사몌에서 윰불라강으로 가기 위해선 얄룽 창포를 따라 난 비포장 도로를 따라 가야 하는데 주변의 풍경이 참으로 멋지다. 모래언덕으로 이루어진 사몌의 이색적인 풍경과 그 반대편의 얄룽 창포의 풍경은 그냥 기분이 좋다.


우리앞을 막아선 양떼들.


 사몌를 떠난지 얼마 안되어 우리가 탄 차는 멈춰야만 했는데 우리앞을 방목하는 양떼들이 가로막고 서 있었다. 우린 양떼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려야만 했다.


대관령 양떼 목장과는 스케일이 다르다.


양떼들을 뒤로 하고.


 엄청난 수의 양떼들은 주변 풍광과 함께 장관을 이뤘다.


윰불라강과 얄룽 계곡.

 윰불라강으로 가는 관문인 체탕에 들려 끼니를 대신할 과일을 좀 사고 체탕 부근에 위치한 윰불라강으로 향했다. 윰불라강은 티벳에서 제일 오래된 건축물인데 우리가 사진으로 보던 유럽의 성처럼 산 위에 서 있다. 티벳 최초의 왕인 넨트리 첸포가 하늘에서 줄을 타고 내려온 장소라는 전설이 있다. 윰불라강에 도착하니 윰불라강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의 입구에서 티벳인들이 말을 타고 올라가라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 보여 그들과 흥정을 해 말에 오르긴 했는데 언덕길 옆의 경사가 심한지라 올라갈 땐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내려갈 땐 내심 덜덜거리는 마음이었다. 이 윰불라강을 뒤쪽으로 산을 오르면 얄룽계곡의 풍경이 펼쳐진다.


다시 얄룽 창포를 따라 라싸로.


 다시 얄룽창포를 따라 라싸로~


라싸에 도착해 바코르 광장으로 가는 길.


떴다! 무지개!


 라싸에 도착하니 슬슬 저녁때인지라 식사를 하고 들어가려고 숙소로 바로 가지않고 바코르 광장에서 차에서 내렸다. 바코르 광장에 도착해 조캉사원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는데 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고대를 돌려 보니 조캉사원 뒤로 무지개가 떠 있었다. 마치 라싸로 무사히 도착한 우리일행을 반가히 마중해주는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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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31 04:48 Travel/티벳

 

 
 새벽 4시. 비몽사몽 상태에서 말을 듣지않는 몸을 이끌고 우린 하늘호수라 불리는 남쵸로 향했다. 남쵸(Namtso)는 라싸에서 북쪽으로 19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호수로 이때 마침 남쵸로 가는 길이 공사중인지라 공사 시간을 피해야 했기에 새벽 4시란 이른 시간에 길을 떠나야만 했다. 워낙 이른 시간이었기에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뿐이라곤 어둠뿐이었고 길엔 오직 우리만이 달리고 있었다. 차에 올라 라싸를 빠져나갈 때가 되었을까 처음 얘기를 나누던 것도 잠깐 다들 졸리는지 이내 잠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어둠이 사라지고 주변의 풍경이 어스름이 들어나며 그동안 내가 티벳에 와서 이제껏 보지 못했던 낯설면서 아름다운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지만 못내 아쉬웠지만 넓게 펼쳐진 초원과 야크(Yak) 떼들... 그리고 설산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참고로 티벳의 여름 날씨는 우기로 아침 저녁으로 흐리고 비도 내리는 경우가 많지만 정오 무렵(베이징과 동일한 시간대를 쓰는지라 실제 시간대와의 괴리때문에 실제 우리의 오전 10시 무렵이라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게 갠다.

라켄라를 넘으니 서서히 남쵸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남쵸로 들어가는 길목의 어느 공에 위치한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매하고 차를 달리는데 어느 순간 우리앞을 양떼가 가로막고 서 있다. 양떼가 지나가길 기다려 조금 더 달리니 남쵸로 넘어가는 고개의 정상 라켄라(Lakenla)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이정표를 바라보니 이곳의 해발 고도는 5190m. 백두산 높이가 2700m대니 2배가 조금 안되는 높이다. 우린 5000m가 넘는 이곳을 밟은 것이 신기해 이정표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고 부산을 떨었다. 그렇게 한차례 부산을 떨다 하늘에서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다시 차에 오르는데 갑자기 다리가 풀리며 머리가 어지럽다. 편안히 차를 타고 갈 땐 몰랐는데 아차하는 사이에 고산 반응이 온 것이다. 차에 올라 앉아 있으니 그런 증상은 곧 사라졌다. 일행에게 이 얘기를 하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머지 분들도 모두 약간의 고산 증세를 느꼈다고 하신다. 어째 불안하다.

 라켄라에 올랐으니 이젠 내려갈 일만 남았다. 그렇게 비포장 도로를 신나게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저 멀리 하늘 호수 남쵸의 모습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남쵸는 티벳어로 하늘 호수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호수면의 높이가 해발고도 4718m로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소금 호수로 티벳 불교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성호(聖湖) 중 하나다. 우리가 흔히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를 얘기할 때 가장 많이들 떠올리는 남미의 티티카카(Titicaca)의 해수면 높이가 3810m니 과연 하늘 호수란 이름가 그렇게 어울릴 수 없다. 하지만 해발고도가 그만큼 높은만큼 고소 적응이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남쵸를 여행하는 것은 고산병의 위협에 노출되기 쉽다.  때문에 티벳을 여행할 때 어느 정도 고소 적응이 된 여행의 일정 후반에 남쵸를 여행하는 것이 고산병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아쉽게도 우린 그러한 사항을 그만 간과하고 말았다.
 

웅대한 모습의 남쵸와 그곳을 달리는 오토바이 한대.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거 같은 남쵸인지라 조금만 달리면 도착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최종 목적지인 남쵸 남동쪽의 타쉬 도르(Tashi Dor)사원까진 생각보단 긴 1시간여를 달려서야 겨우 목적지이자 우리가 남쵸에서 하루를 보낼 타시 도르 사원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사원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티벳인들이 운영하는 텐트로 가  풀려고 들어가는데 하늘에서 갑자기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빗줄기가 거세진다. 그렇게 비가 내리자 시작하자 서서히 한기가 몰려왔다. 우린 어쩔 수 없이 티벳인들의 숙소에서 난로 곁에서 몸을 녹이며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그렇게 몸을 녹이다 난로의 연로로 쓰이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니 말로만 듣던 말린 야크똥이 아닌가? 수목한계선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티벳의 고원지대에선 나무를 땔감으로 쓰는 것이 힘들어 야크똥을 말려 연료로 사용한다고 하는데 그것을 직접 목격하니 신기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밖에선 비가 서서히 그치며 흐렸던 하늘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가 완전히 그치자 우린 텐트로 가 잠시 눈을 붙이고 좀 쉰 후에 주변을 둘러보기로 하고 다들 침상에 몸을 맡기고 잠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머리가 너무 아프고 몸에 힘이 없었다. 젠장. 고산병이었다. 겨우 몸을 일으켜 다른 일행을 보니 다들 고산병 증세가 보였다. 아마 너무 이른 시간에 움직이다 보니 잠도 부족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한데다 라싸보다도 1000m나 높은 곳이니 몸이 버텨내지 못한 거 같았다. 하긴 컨디션이 좋은 상태라도 힘들 수 있는데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일행들과 얘기해 그간의 경험처럼 좀 더 휴식을 취하면 좀 괜찮을 거 같아 우린 다시 침상에 몸을 눕히고 억지로나마 잠을 청했다. 그렇게 잠깐 잠이 들었다 싶었지만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잠도 더 이상 안오고 아프지만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호숫가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웅대한 남쵸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티벳을 상징하는 동물인 야크가 한가로이 쉬고 있다.


 발이 마치 천근이라도 되는 것처럼 무거웠다. 아마 보통의 경우였다면 그냥 텐트에 누워 있었겠지만 남쵸의 풍경은 고산병의 고통속에서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도록 강요했다. 난 당시 걷는 것이 이렇게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겨우 2,300m를 가는데 30여분이 걸렸다. 마치 그것은 걷는다기 보다 억지로 몸을 끌고 가는 느낌이었고 내 정신상태는 비몽사몽 정신이 없었다. 솔직히 당시 구도고 뭐고 그냥 셔터를 눌렀다. 나중에 한국으로 와 사진을 정리했을 땐 말도 안되는 상태의 사진이 전체의 반이 넘었다. 노출이니 조리개니 신경을 쓸 정신상태가 아녔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면 분명 나중에 후회할 것이란 생각이 날 계속 걷게 했다.

티벳의 성호답게 호숫가엔 누군가 소원을 빌었을 돌탑을 쉽게 볼 수 있다.


 호숫가를 따라 2,300m 걸으니 너무 힘들어 쉴겸 해서 돌탑들이 옹기종기 쌓인 곳에 자리를 잡고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니 아픈 와중에서도 따뜻한 햇살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기분이 좋아진다. 주머니 손을 넣으니 레모나가 하나 있어 꺼내 먹으려 보니 포장이 터질듯이 부풀어 있었다. 고도가 높다보니 기압이 낮아 발생한 현상이었다. 그렇게 레모나 하나를 입에 넣고 그냥 그 자리에 앉아 멍하니 몇십분을 있었을까 왠 중국여자 하나가 다가와 말을 걸며 카메라를 건네며 사진을 한장 부탁한다. 평소의 경우라면 별거 아닌 부탁이었지만 당시엔 너무 힘들고 귀찮아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짜증이 났지만 겉으론 내색하지 않고 사진을 찍어주고 나도 사진 한장 부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비몽사몽을 때 찍은 사진이라 포커스나 제대로 맞았을지 걱정이다. 아마 그 중국여자가 운이 없었으면 포커스가 그 여자의 얼굴이 아니라 뒤에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난 더 이상 저렇게 걸을 수 없었다.


하늘과 물 그리고 구름이 하나가 되는 곳, 그 곳이 남쵸다.


나도 조심스레 가족의 건강과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도록 소원을 빌었다.


저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


 호숫가를 둘러보고 다시 발걸음을 숙소쪽으로 옮기니 숙소 앞에 이선생님께서 나와 계셨다. 선생님께 말을 건냈지만 영 안색이 좋지 않으신 거 같았고 힘들어 하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숙소로 이선생님과 돌아와보니 다른 두분의 상태로 악화되어 있었다. 상황은 계속 더 나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우린 결국 얘기를 나눈 후 남쵸에서 1박하려던 처으의 계획을 포기하고 저지대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이대로 있다간 다들 상태가 더 나빠질 듯 하여 남쵸에 남아봤자 몸만 힘들다는 생각에 내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는 없었다.  

남쵸를 떠나며 아쉬움에 계속 뒤를 돌아봤다.


 기사 아저씨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우린 차에 몸을 실었다. 남쵸를 서두러 떠나야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단 안도감도 들었다. 하지만 차가 서서히 남쵸에서 멀어지수록 아쉬운 마음이 진해졌고 우린 계속 멀어져 가는 남쵸를 뒤돌아 봤다. 아주 잠깐이었지고 힘든 경험이었지만 아마 남쵸의 아름다운 풍경은 결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티벳을 다시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땐 남쵸를 꼭 다시 찾을 것이다.

차창밖의 풍경을 뒤로 하며 언젠가 다시 돌아오길 기원했다.


 남쵸를 떠난지 얼마 안되어 서서히 그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져 간다. 아쉽다. 아니 안타깝다. 하지만 우리가 탄 차는 그런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라켄라로 향했다. 이젠 남쵸으 모습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남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아쉬운 마음이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당장은 우리의 몸을 추스르는 것이 우선이라 우선 남쵸에서 가장 가까은 마을이자 상대적으로 저지대인 담슝(Damxung)으로 향했다. 저지대인 담슝에 도착했지만 지끈거리는 두통은 그대로다. 그나마 노점에서 산 사과로 배라도 채우니 그나마 좀 나아졌지만 아직도 힘들다. 결국 밤에 겨우 라싸에 도착해 숙소의 침대에 눕자 금새 잠이 들었다.

14대 달라이라마의 흔적이 남아있는 탁텐 미규 포트랑.


 남쵸에서 돌아온 다음날 일어나니 약간의 두통이 있지만 어제 정돈 아닌지라 난 일행 중 한명인 훈이형과 함께 라싸내에 있는 달라이 라마의 여름 궁전인 노불링카(Norbulingkha)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노불링카 입구에 내려 티켓을 사고 들어가니 여기저기 공사판이라 약간 당황스러웠다. 그러한 곳들을 지나 우린 우선 지금이 현 달라이라마인 14대 달라이라마가 세운 탁텐 미규 포트랑(Takten Migyu Potrang)으로 향했다. 이곳엔 달라이라마가 사용하던 물건들이 그가 떠날 때 그대로의 상태로 전시되어 있는데 의외로 서구의 현대적인 물건들이 많은 것이 흥미롭다. 14대 달라이라마는 어린 시절 서구 문명에 흥미를 느꼈던 사실을 얘기하 적이 있는데 그 흔적들이라 할 수 있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티벳에서의 7년'에서도 이러한 달라이라마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영화의 실제 모델인 하인리히 하러(Heinrich Harrer)는 영화에서처럼 1950년대에 달라이라마가 작은 영화관을 만드는 것을 돕기도 했다고 한다. 

탁텐미규포트랑의 옆에 위치한 작은 호수에 자리한 정자.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던 티벳 아이들.


 탁텐 미규 포트랑과 그 앞의 정자를 나와 노불링카를 둘러보지만 솔직히 그리 눈길을 끄는 것도 없고 여기 공사가 진행중이라 난잡한 느낌이었다. 당시가 서장자치구 50주년인가 되는 해인지라 가을에 후진따오를 비롯한 중국지도부들이 대거 티벳을 방문 예정이라 티벳 여기저기서 공사중이었는데 노불링카같이 많은 곳이 공사중인 곳은 처음이었다. 훈이형과 난 결국 이리저리 돌아다녀 봤지만 실망스러워 그냥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사람들의 노래 소리가 들렸다. 우린 그 노래 소리에 이끌려 그곳으로 가보니 다수의 티벳인들이 박자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그 중에서 일하던 이들이 우릴 발견하고 우리에게 다가와 뭐라 말을 거는데 뭐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나? 그냥 티벳어로 인사를 하니 그중 아이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보인다. 간단한 중국어와 영어로 대화를 시도해보지만 모두가 허사인지라 아쉽다. 티벳인들은 상당수가 중국어를 못한다. 뭐 이건 나도 중국어래봐야 숫자 몇개와 문장 몇개가 다니 어차피 소용이 없지만 말이다. 영어야 말할 필요도 없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가서 제일 재밌는 것인데 대화가 안되니 아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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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중국 | 라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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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larepa
2012.05.31 04:48 Travel/티벳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과 음식을 잘못 먹어 체한 것처럼 속이 더부룩하면서 계속되는 구역질이 밤새도록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 숙소의 침대에서 홀로 외롭게 누워있으니 기대했던 여행의 첫 시작을  치가 떨리는 고산병으로 시작하던 내 머릿속엔 “내가 이곳에 왜 왔을까?"라는 후회가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이런 저럼 생각을 하며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다 나는 어느 순간 고통이 잦아드는 것을 느끼며 슬며시 잠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티벳 여행은 고산병이란 반갑지않은 친구가 제일 먼저 반겨주며 시작되었다.

  2002년 어느 날 우연히 접하게 되었던 밀라레파(Milarepa, 티벳의 위대한 승려이자 시성(詩聖))라는 이름. 당시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에 관련된 기사를 인터넷으로 접하다 기사에 실린 그들이 1994년에 티벳의 독립을 위한 기금을 모집하는 밀라레파 재단(Milarepa Fund)을 설립하여 기금 모금을 위한 자선 콘서트를 열고 있다는 내용에 눈이 쏠렸다. 처음 화려한 라인업의 콘서트에 시선이 뺏겼던 난 그들이 설립한 재단의 이름인 밀라레파가 도대체 무슨 뜻인가 궁금해졌다. 그러한 의문에 자연스레 검색창에 밀라레파란 단어를 입력하게 되었고 그에 흥미가 생겨 어느새 그에 대한 책을 한권 구해 읽어봤다. 그러다 자연스레 밀라레파의 대지, 티벳에 대한 호기심으로 발전하였고 우연히 접한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을 읽으며 나는 샹그릴라(Shagri-La, 잃어버린 지평선의 배경이 되는 티벳 어딘가에 존재하다고 전해지는 지상낙원과 같은 곳)에 대한 나의 알 수 없는 동경은 점점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커져갔다.

 밀라레파(Jetsun Milarepa, 1040~1123) - 티벳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자이자 시인으로 지금까지 그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티벳에 전해져 내려온다. 전해져오는 얘기로 그는 장사로 큰 돈을 벌었던 아버지가 일곱 살 때 죽자 그의 백부는 그 재산을 빼앗고 그의 어머니에게 자신과 결혼하기를 강요하였다고 한다. 이에 그의 어머니는 이를 완강히 거부하고 밀라레파에게 흑마술을 배우게 했는데 이 흑마술을 익힌 밀라레파는 주문으로 백부의 집을 무너뜨려 그 가족을 모두 몰살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원수를 갚은 후 밀라레파는 자신의 행동에 회의를 느끼고 죄업을 뉘우치며 불문에 귀의했다고 한다. 이후 카규파(Kagyupa, 티벳의 4대 종파 중의 하나로 우리가 알고 있는 달라이라마는 4대 종파 중 최대종파인 겔룩파의 수장이다.)의 마르파의 제자가 되어 깨달음을 얻어 많은 이들을 신통력을 발휘하여 교화하다 그를 질투한 승려가 준 음식을 먹고 열반하였다고 한다.


과거를 포함한 티벳의 영토와 여행경로를 나타낸 지도.


 2005년 7월 19일 밤. 지상의 불빛들이 하나둘 점점 멀어지면서 이내 비행기 창밖으론 까만 어둠만이 가득했다. 그러한 어둠을 뚫고 나를 실은 비행기는 중국 시안(西安)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륙시의 짧은 침묵을 뒤로 하고 공항에서 처음 만난 일행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지만 이내 어색함에 우리들 사이엔 그저 적막만이 가득 차며 서로 각자만의 상념에 빠져들었다. 3시간여을 날아 시안에 도착해 공항 주변의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은 우리는 육로로 라싸(拉薩, Lhasa)로 들어가기로 한 이들과 헤어져 이른 아침에 라싸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위해 다시 청두(成都)행 비행기에 올랐다. 짧은 비행을 마치고 청두공항에 내린 우리는 먼저 청두에 도착해 있던 두 명을 만나 간단히 서로 인사를 나눴다. 당시 티벳 여행의 처음을 같이 했던 일행들은 경상도에서 온 누나 둘과 경주에서 교사를 하신다는 이선생님 그리고 먼저 청두에 도착해 합류하셨던 훈이형과 중국어가 유창하셨고 나와 동성(同姓)이라 내가 작은 할아버지라 불렀던 분까지 해서 나를 포함해서 6명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중에 라싸에서 헤어질 때까지 가졌던 짧았던 시간은 내가 했던 모든 여행의 시간 속에서도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었던 듯 하다.

 드디어 라싸행 비행기에 오르고 비행기가 이륙하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제 인천공항을 이륙할 때 느꼈던 두근거림이 커지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흘러 창밖의 지상 풍경이 푸른색에서 황토빛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보면서 조금씩 티벳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풍경이 점점 내가 사진으로 보며 상상만 하던 풍경이 펼쳐질 즈음 멀리서 어렴풋이 라싸의 관문인 공가공항이 모습을 드러냈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활주로에 비행기가 착륙하고 활주로로 내려오는 계단을 내려가 공가공항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여름이지만 고산 지대인지라 서늘한 느낌의 바람과 강한 햇살이 느껴졌다. 활주로에 내려 주변을 둘러보니 메마른 티벳의 풍경과 푸른 하늘이 펼쳐지고 있었다. 


라싸의 관문인 공가공항에 도착하다.

 
 바로 짐을 찾아 나오니 우리를 라싸로 데려다주기 위해 나온 사람을 따라 버스에 짐을 실고 우린 티벳 여행의 시작이자 중심인 라싸로 향했다. 공가공항에서 라싸까지는 2시간여를 가야하는데 여행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로 시끌벅쩍하던 차안도 어제 오늘 빡빡한 비행 일정으로 부족한 잠때문인지 하나둘 잠에 빠져들며 어느새 조용해져 갔다. 고요함이 가득 찬 차안에서 난 스쳐 지나가는 티벳의 첫 모습을 마음에 그려 넣었다. 


얄룽창포를 따라 공가공항에서 라싸로 가던 중에.

 
 2시간여를 달렸을까? 메마르고 황량하기만 했던 주변의 풍경이 바뀌며 어느새 잘 정돈된 건물들이 하나둘씩 보이는 가 싶더니 우린 드디어 라싸에 진입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라싸의 풍경을 구경하고 있는데 옆에서 나를 두드리며 반대편을 한번 보라고 소리친다. 그곳에선 라싸를 상징하는 포탈라궁이 그 모습을 드러내며 라싸에 들어서는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라싸의 상징이 포탈라궁.

 
 그러나 포탈라궁을 제외한 라싸에 대한 첫 인상은 결코 내가 상상하던 라싸의 모습이 아니었다. 내가 본 라싸의 첫 느낌은 마치 중국의 다른 여느 소도시를 둘러보는 느낌이었다. 하긴 내가 티벳 여행을 했던 2005년에 이미 라싸 인구의 50% 이상이 한족이라는 얘기가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티벳의 중심인 라싸가 티벳인들의 라싸가 아닌 한족의 라싸가 되어가고 있단 생각이 들자 참으로 씁쓸한 기분이었다. 아마 2006년에 개통된 칭짱철도(靑藏鐵道)로 인해 지금에 이르러선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지만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으리란 건 아마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물론 그저 티벳을 여행하는 우리같은 외부에서 온 여행객들에게 칭짱철도는 분명 비행기와 도로로 제한되었던 티벳으로 가는 길이 쉬워졌을지 모르겠지만 한족의 유입과 한족 자본의 유입이 가속화되면서 티벳의 원래 주인들이 가지고 있던 위치마저 한족들이 차지하게 되면서 티벳인들은 그들의 땅에서조차 2등 시민으로 전락했고 이러한 일들이 계속된다면 티벳 문화의 정체성은 점점 희미해져 역사책 속에서나 볼 수 있게될지 모를 일이다. 언제 다시 가볼지 모르겠지만 부디 티벳의 문화가 계속 잘 보존되길 바랄뿐이다.

 칭짱철도(靑藏鐵道) - 칭하이성(靑海省) 시닝(西寧)에서 꺼얼무(格爾木)를 거쳐 티벳 라싸에 이르는 1956km에 걸쳐 놓인 철도로 꺼얼무와 라싸를 연결하는 구간의 경우 평균 해발고도가 4500m에 이르며 가장 높은 곳의 경우 5072m에 위치하여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철도다. 2006년 7월 1일 완전히 개통하였는데 교통이 불편하여 물자와 인력의 교류가 힘들던 티벳과 중국 본토를 잇게 되어 본토에서 티벳으로의 무차별적인 한족들의 이주와 한족 자본 유입으로 결국 티벳이 문화·경제적으로 더더욱 중국에 종속하게 되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티벳불교 최고의 성지인 조캉사원.

                                                                                                                           
 숙소인 태양빈관에 도착해 우선 짐을 풀고 티벳을 여행하는 동안 많은 도움을 주셨던 오선생님의 숙소에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숙소를 나서 바코르 광장으로 향했다. 라싸에서의 첫날인지라 고산병 걱정에 가볍게 바코르 광장 주변을 돌고 숙소로 돌아와 일행과 함께 여행 계획을 세우다 오선생님께 물어볼 것이 있어 다시 오선생님의 숙소가 있는 4층에 오르는데 나도  갑자기 어지럽고 숨이 가빠지는 느낌이었다. 고산병이었다. 머리는 무언가로 찌르는 듯이 아팠고 구역질이 계속 되고 배는 가스가 차는 느낌이었다. 일행들과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어서 결국 첫날은 그렇게 고산병과 함께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날밤 고산병의 고통속에서 내 머리속에 떠오른 생각은 티벳에 온 것에 대한 후회뿐이었다. 그렇게 나의 티벳 여행은 시작되었다.

 다음날 눈을 뜨니 어제의 고통이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고산병 증세는 사라지고 나는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을 수 있었다. 숙소 주변의 한족 식당에서 가볍게 아침을 해결하고 전날 오선생님께서 말해주신대로 포탈라궁의 표를 예매하기 위해 시간에 맞춰 포탈라궁으로 향했다.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포탈라궁은 중국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그 보호를 위해 관람객수와 시간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어 관람일 전날 미리 예매를 해야 했고 관광 성수기인 여름엔 금방 표가 동이 나 예매 시작 시간에 맞춰 미리 줄을 서서 기다리던지 여행사를 통해 예매를 해야 했다.


포탈라궁 담을 따라 이어진 마니차.

                                                                                                                     
 2시간여를 기다려 다음날 표를 예매한 우린 포탈라궁 주변을 가볍게 둘러보기로 하고 포탈라궁 입구 옆으로 난 담을 따라 있던 마니차를 생전 처음 돌려보며 포탈라궁 옆의 시장에 들어서니 온통 야크버터 냄새가 진동을 했다. 처음 맡는 어색한 냄새에 약간의 거부감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그리운 티벳의 향기다.

조캉사원 앞에서 오체투지중인 할머니.

                                                                                                            

 
다음날 아침 우선 우린 조캉 사원으로 향했다. 꽤나 이른 시간이었지만 조캉 사원 앞은 오체투지를 올리고 있는 이들과 조캉 사원 정문 양 옆에 위치한 곳에서 향을 태우는 이들로 인해 북적이고 있었다. 

조캉사원의 최고 볼거리인 사원 옥상의 화려한 금장식들.

                                                                                                                                                                             
 
 티벳 불교의 최대 성지 중 하나인 조캉 사원. 조캉 사원은 티벳을 최초로 통일한 송첸 캄포가 그의 왕비 중 하나였던 네팔 공주 브리쿠티 공주가 가져온 불상을모시기 위해 처음 건축되었다고 한다. 후에 송첸 캄포의 또 다른 부인인 문성공주가 가져 온 불상도 라모체 사원에서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러나 티벳 불교의 성지로 오랜 세월을 보낸 조캉 사원이었지만 문화혁명 초기에 홍위병들에 의해 조캉 사원의 많은 부분들이 파괴되어 일부는 돼지우리로 쓰이는 치욕을 겪기도 하였다고 한다. 1980년대 복원이 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조캉사원 옥상에서 바라본 포탈라궁.

                                                                                                                      
 조캉 사원에서 제일 중요한 보물은 문성공주가 가져온 불상이라 할 수 있지만 여행자인 우리에게 조캉 사원에서 제일 중요한 곳은 화려한 금으로 치장된 사원의 옥상이다. 조캉 사원의 옥상에 오르면 우선 화려한 금으로 만들어진 지붕의 장식들이 우선 눈에 띈다. 또 여기선 조캉 사원의 구조상 가운데가 뚫려 있는 구조가 옥상에서 사원 아래를 볼 수 있어 실제로 사원에서 가장 매력적인 곳이라 할 수 있다.

조캉사원 옥상에서 내려다본 바코르 광장의 모습.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조캉 사원 옥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면 많은 티벳인들이 조캉 사원앞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캉사원을 중심으로 정사각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순례루트가 바로 바코르다. 이 바코르를 시계 방향으로 많은 티벳인들이 순례를 돈다.(참고로 티벳 현지에서 순례를 돌 때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이들은 티벳 토속 종교인 뵌교인들이라고 한다.) 이 바코르 주변으론 많은 기념품점이 자리잡고 있고 많은 여행사와 숙박업소도 모여 있어 라싸 여행의 중심지다.


포탈라궁을 향해서.

                                                                                                                                                                     
 조캉 사원을 둘러 보고 나와 바코르 근처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예매했던 포탈라궁 입장 시간에 맞춰 포타라궁으로 향했다. 입장 시간 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기에 조금 기다리니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석판에 조각된 티벳인들이 입에 달고사은 육두진언 '옴마니반메훔'.

                                                                                                                                           
 포탈라궁은 홍산 위에 지어진 건축물이기에 포탈라궁에 들어가려면 매표소를 지나 나지막한 언덕길을 올라야 한다. 우리나라였다면 조금 빠른 걸음으로 오르겠지만 라싸에 처음 도착해 당한 경험이 있는지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언덕길을 오르다 보니 옆으로 티벳어가 새겨진 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티벳인들이 많이 외우는 옴마니반메훔의 육자진언이었는데 이 진언은 티벳 어디를 가나 쉽게 볼 수 있었다.


포탈라궁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

                                                                                                                          
 언덕을 조금 올라 몇개의 문을 지나니 넓은 마당같은 곳이 나오며 반대편에 포탈라궁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입구쪽으로 다가가니 계단이 3개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가운데 계단만은 통행이 제한되어 있었는데 알고보니 입구의 가운데 계단은 오직 달라이라마만이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입구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포탈라궁내부를 구경할 수 있는데 아쉽게도 포탈라궁 안(실내를 말함)에선 촬영이 금지라 사진이기도 했고 사실 워낙 빛이 부족한지라 아무리 카메라의 감도를 올린다해도 삼각대가 없으면 촬영하기 결코 쉽지 않은 환경인지라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아쉽긴 하다.


포탈라궁 옥상의 금장식들.

                                                                              
 포탈라궁의 내부는 앞서 얘기했듯이 빛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어둡고 무겁다. 이때문인지 달라이라마들이 무거운 분위기의 포탈라궁에서 지내는 것보다 달라이라마의 여름궁전인 노블링카에서 지내는 것을 선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포탈라궁의 내부는 티벳의 역사의 보고라고 해도 좋을만큼 수많은 볼거리들이 가득했다.

포탈라궁에서 쥐를 잡는다는 고양이들.

                                                                                            
 포탈라궁을 둘러보다 궁 내부의 유물 보수하던 분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분들이 일하는 것이 흥미가 일어 보고 있으니 일하시던 분들 중 한분께서 우리에게 잠시 쉬어가라며 않을 자리를 내주시곤 수유차(야크버터가 들어간 티벳 고유의 차로 티벳인들의 중요한 비타민 공급원이라고 한다)를 한잔식 권하셨다. 아저씬 우리에게 간단한 영어로 자신이 보수하던 유물에 설명해주시기도 하셨다. 아저씨들이 내주신 자리 옆엔 고양이들이 있어 신기했는데 아저씨께선 포탈라궁에 있는 쥐를 잡기 위해 고양이를 기르고 있다고 한다. 그분들과 얘기를 나누다 그분들고 일을 계속 하셔야 했기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포탈라궁을 계속 둘러봤는데 죠캉사원이 내부가 큰 감흥이 업던 거에 비해 포탈라궁은 옥상은 아쉬웠지만 그 안엔 내눈을 끄는 많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티벳의 보물들이 내 눈을 즐겁게 해줬다. 사진을 하나도 찍지 못해 아쉬었지만 포탈라궁에을 나오며 포탈라궁에 관한 책 한권을 사며 아쉬움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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